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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형상화
신통한 영물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 실려 전하는 죽통미녀(竹筒美女)와 삼국유사에 실려 전하는 만파식적(萬波息笛), 미추왕대(味鄒王代) 죽엽군(竹葉軍) 등이 대나무와 관련 있는 설화이다. 죽통미녀는 우리나라 초창기 설화로 당시의 기이한 이야기로 꾸며진 민간설화이다. 김유신이 서주(西州)로부터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이채로운 한 나그네를 만났다. 그가 걷다가 나무아래에서 쉬므로 김유신도 따라 쉬며 자는척 하였다. 그 나그네는 행인이 없는 틈을 타서 주머니에 죽통을 꺼내어 흔드니 죽통에서 미녀가 나왔다. 그들은 같이 이야기하다가 미녀가 죽통으로 들어가자 다시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김유신이 따라가 그 사람과 얘기해보니 성품이온화하여 함께 서울로 왔다. 유신은 그와 함께 남산 소나무 아래에서 잔치를 벌였다. 두 미녀도 나와 참석하였는데 그 손님이 이르기를 ‘나는 서해에 있는 사람으로 동해에 있는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지금 아내와 함께 아내의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이라오’ 라고 하였다. 이때 갑자기 풍운이 일어나 어두워지더니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신라시대 당시 종이와 죽간(竹簡)을 언어표현의 도구로 사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죽통(竹筒)이 나그네가 길을 떠날때 물건을 담아 옮기는 도구로 즐겨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의 민간설화에는 그 장르적인 특성으로 정치적, 종교적, 상징적 표현이 많다. 이 사실을 감안하면 이 작품은 어쩌면 김유신의 비상함과 신비성을 드높이기 위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가 삼국을 통일하는 과업을 수행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실린 미추왕대 죽엽군이라는 설화 기록에는 신라 14대 유례왕 때 이서국(伊西國, 삼한시대 부족국가) 사람들이 신라의 금성에 쳐들어 왔으나 적을 대항하기가 힘들었는데 어디선가 대나무 잎을 귀에 꽂은 죽엽군이 신라군을 구원하여 적을 물리쳤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으며, 만파식적(萬波息笛)은 문무왕과 김유신이 합심하여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는데 신라 31대 신문왕이 그에 관한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가 대나무를 잘라 피리를 만들어 국보로 삼았다는 이야기로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낫고 가뭄이 해소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세가지 설화가 모두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과 관련된 이야기로 위대한 인간의 신성화, 혹은 신격화를 위해 널리 전승된 이야기들 가운데 보이는 바와 같이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그 매개체가 대나무였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죽통(竹筒), 대피리, 죽엽(竹葉)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도 민간신앙에서는 대나무 가지를 신내림의 매개체, 곧 영매로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신라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대나무를 신령스런 것, 곧 영물로 인식하였음을 의심할 바가 없다. 그것은 신과 통하는 신령스런 매개체이므로, 곧 신통한 영물이라 할 수 있다.
절개와 지조의 상징
각종 의례행사에서 사용되는 예기(禮器)나 기타 의물(儀物)들은 그 형태와 규격이 법전과 의궤(儀軌)에 명시되어 있다. 죽책(竹冊)은 세자빈책 봉문(世子嬪冊封文)을 새긴 간책(簡冊)으로 평평하게 깎은 대쪽 여러개를 이은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왕이 친히 제사지낼 때 태조묘에는 옥책 (玉冊)의 축문을, 다른묘에는 죽책의 축문을 사용하였는데 그 형태와 규격이 정해져 있었다. 임금의 장례를 국장(國葬), 또는 인산(因山)이라고 하는데 ‘죽산마(竹散馬)’와 ‘죽안마(竹鞍馬)’는 인산 행렬의 대여(大轝) 앞에 배치된다. 죽산마는 굵은 대로 말을 만들고 여기에 종이를 발라 잿 빛 칠을 한 다음 말총으로 갈기와 꼬리를 붙이고 눈알을 박은 것이다. 이것을 두꺼운 널로 만든 길다란 우물 정자 틀에 두 바퀴를 단 거(車)에 올려놓고 끌게 하였다. 죽안마는 죽산마에 안장을 얹은 것으로 죽사마(竹駟馬)라고 하여 네 필을 만들어 두 필은 흰빛으로 나머지 두 필은 붉은 빛으로 칠했다.
일반 사가의 혼례, 상례 및 제례에도 죽제품이 쓰였다.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사주단자를 보낼 때 구겨지지 않도록 사주봉투보다 약간 긴 대나 무나 싸리가지를 두 가닥 내어 그 사이에 사주봉투를 끼우고 청실홍실의 둥근 타래실로 매듭지지 않게 옭아 묶는다. 혼인날 신부집에서 초례상 을 차릴 때 송죽, 즉 소나무와 대나무를 화병에 담아 상 양쪽에 배치했는데 푸른 댓잎이 달린 대나무는 변하지 않는 부부애를 상징한다. 상례때 상주가 대나무로 만든 둥근 상장(喪杖)을 짚고 있으면 부모상을 당했음을 의미한다. 상중(喪中)에는 방갓위에 흰색천을 씌운백립(白笠)을 쓰는 데 이것은 상중에 바깥출입을 해야 하는 상주(喪主)가 쓰는 모자로 삿갓보다 정교하게 만든 것이 방갓이다. 방갓은 가늘고 얇게 쪼갠 대오리를 삿갓모양으로 만들어 거죽으로 하고 왕골속을 엮어서 안을 받친 것이다. 상여 뒤를 따르는 만장은 대나무 장대에 매달았다.
죽간자(竹竿子)는 당악정재(唐樂呈才)가 진행되는 동안 춤이 시작하고 끝날 때 선두에 서서 인도하는 구실을 하는 의물의 하나다. 봉죽간자 (奉竹竿子)라고도 한다. 서해안 어촌에서는 풍어제가 시작될 때 마을 입구 양쪽에 봉죽(奉)을 세워두기도 하며, 동해안에서는 죽은 영혼을 달래 어 천도하는 진오귀굿이 벌어지면 미리 대나무와 종이로 정교하게 만든 용선(龍船)이 제작된다. 임금이 과거 급제자에게 내리는 어사화나 각종 잔치에 꽂아놓는 지화(紙花)도 그 골격을 대나무로 만든다. 대나무로 만든 무기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도 매우 오래전의 일이며 대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은 가장 중요한 무기였다. 왕건이 고려 태조로 추대되었을 때 견훤이 이를 축하하며 지리산 죽전(竹箭, 대화살)을 선물하였다. 죽전을 담는 전통(箭筒, 화살통)이나 대나무로 만든 죽창(竹槍), 죽도(竹刀)도 죽전과 함께 오래전부터 제작되고 사용되었다.
죽장창(竹長槍)은 무예를 익히는데 쓰던 창이다. 죽패(竹牌)는 대나무 다발로 화살을 막기 위해 제작된 방어용 무기로 죽속(竹束)이라고도 한다. 대나무를 깃대로 사용하는 두레패의 농기(農旗)도 군기(軍旗)의 성격을 갖는다.